동명의 교육관
동명은 자수성가를 통해 얻어진 부와 명성을 헌신적인 사회 봉사활동에 투자함으로써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에 선도적 소임을 다하였다. 대기업가로서 억만의 재물을 소유하면서도 언제나 그는 가을철 누른 들판의 알찬 벼이삭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적 예를 다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일관되게 처신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자취는 더욱 돋보이고 또 그런 이타적인 인간성에 존경의 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가 경제활동을 시작한지 반세기가 넘어선 고도성장의 번영기에 그리고 고희에 접어든 늦은 시기에 육영재단을 설립하게 된 것은 평소 교육에 관심이 적었다거나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빵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이어 이를 밑거름으로 하여 육영을 실현하고자 했던 사려깊은 인생설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관자(管子)의 권수편(權修篇)에 "1년을 위한 대비책으로 곡식을 심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 10년을 위한 대비책으로는 나무를 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며, 평생을 위한 대비책으로는 인간을 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하는 뜻을 동명은 깊이 명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1차적으로 경제적 자립을 성취한 후에는 평소에 유념하고 있었던 인재교육을 필생의 사업으로 추진하려는 적극성을 보였다. 그의 이러한 사려 깊은 인생설계가 있었기에 경제적 소망이 현실화되었다고 판단되어진 인생의 최절정기를 택하여 그 뜻을 구체화한 동명문화학원을 설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78.3.6)
그가 이러한 길을 택하게 된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가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가정적으로 훈도의 엄친 밑에서 소년기를 보내었으므로 유가의 교육적 가풍에 영향을 받아 교육에 남다른 관심과 그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던 데다가 가난을 딛고 일어서고자 결심한 소년기의 출향과 사회적 체험은 향학에 대한 강렬한 요구를 자극하였을 것이다.
둘째 확고부동한 대기업으로 발돋움하면서 고도성장과 국제화·개방화의 추세에 필요한 산업인력을 수급하기 위해서 교육은 가장 효율적인 투자요, 동시에 시대적 과업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국제화·개방화의 시대적 조류는 냉전체제 해체를 전후로 한 1980년대 말 이후의 세계사적인 조류였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수출입 교역을 위해 직접 해외로 진출하여 현장에서 외국인과 몸을 부닥치며 적극적인 교섭을 진척시켜 오면서 미래의 지구촌은 반드시 일일생활권으로 포괄될 것이고 나아가 철의 장막이나 죽의 장막도 서서히 거두어지면서 궁극적으로는 국경을 초월한 세계 시장의 문이 열릴 것으로 예견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사의 조류에 동승하거나 한발 앞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시대적 흐름에 능히 대처할 수 있는 유능한 기능·기술인과 능숙한 외국어 달인을 양성키 위한 육영의 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에 적절한 학교를 설립하고자했다.

배고파 구걸하는 자에게 빵을 집어주어 허기를 순간적으로 해결해 주느니 보다 빵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주거나 혹은 물고기 한 마리를 선뜻 집어주기보다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어 삶을 꾸려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삶의 지혜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상응하는 교육을 시킴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광복 이후 우리 민족에게 부여된 3대 명제는 경제 자립과 민주주의 토착화 그리고 민족의 통일이었다. 이를 성취함에 있어서는 자원 여건이나 정치·사회적 실정 혹은 주변 정세 여건 등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쉽게 풀어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지 않고 있었다. 바로 이런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소기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저력이 된 것은 두말 할 나위 없이 국민교육이었던 것이다.
동명은 교육자도, 교육사상가도, 교육행정가도, 교육이론가도 아닌 평범한 기업인으로서 학교 법인 동명문화학원을 설립한 것이다. 그가 주창한 건학정신에는 "사람은 천부적으로 창조적 기능의 책임을 부여받았다. 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기술을 갖춘 위에 근면·성실해야 한다. 내일의 조국 번영과 인류복지 증진에 공헌 봉사하여 천부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유능한 후진을 기르기 위하여 여기 동명문화학원을 설립한다."라고 명기되어 있다. "어느 방향에 맞추어 인간 교육을 출발시키느냐에 따라 그 삶의 장래가 결정된다."는 플라톤의 말이 시사하듯이 교육방향을 담은 건학정신은 바로 그가 설립한 학원의 교육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창조적 기능을 부여받은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하는 휴머니즘적 인간의식의 기저 위에서 건학의 의미를 정립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그가 인간을 가장 우선하고 있었음을 시사해 주는 것으로 신이 창조한 것 중에서 가장 신묘하게 만들어진 것이 인간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젊은이들을 보면 항시 홍안의 미소를 잃지 않았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언제나 격려의 말씀을 잊지 않으면서 먼저 사람이 될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단순히 고학력 위주의 학문이나 천박한 기술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직업윤리에 투철한 천직의식과 백련천마(百鍊千磨)의 정신을 갖춘 사람을 기대한 것이다. 즉 정직한 인간성과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사고력과 끊임없는 숙련을 거듭할 수 있는 직업정신을 갖춘 사명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